Sunday, April 13, 2014

마드리드 식도락기

마드리에서 나는 한국에서 몇달 전에 일할 때 알게된 스페인 친구인 후안과 연락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 왔을 때 내가 융숭하게 대접해 준 것과 길 찾는 것 등 일상에 도움 준 것 때문에 나를 무척 고마워했다.
변호사인 후안을 아내와 함께 찾았을 때 우리는 무척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선물로 한국 전통 문양의 핸드폰 걸이 몇개와 고추장을 주었다. 후안이 요리를 좋아하고 한국 음식에도 관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안은 우리를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가는 식당으로 데려가주었다.

그곳에서 하몽과 몇 가지 스페인 요리들을 맛보았다. 나는 하몽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매우 즐겨 먹는데 아내도 이곳 식당에서 하몽 맛을 보고 아주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식당 주인은 친절하고 음식을 맛있었으며 분위기는 흥겨웠다.

후안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근래 스페인의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후안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9시 정도에 퇴근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스페인 사람같이 않게 열심이다. 물었더니 요새 스페인은 그저 일자리가 있으면 감사하다고 한다. 일이 많든 적든 일자리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한다.
후안은 원래 바르셀로나에서 일하다가 마드리드로 옮겼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산 집 값이 경제위기로 폭락하는 바람에 그 빚갚기 바쁘다고 한다. 이제 마드리드에서는 집을 빌려서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스페인은 우리랑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역사도 그렇고 음식 문화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다.

역시 현지 친구가 좋다.
후안은 우리에게 요새는 목요일날 스페인 사람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타파스와 와인 한잔 하면서 밤새 떠들고 논다고 알려줬다. 금요일은 일찍 끝나고 집에가는 분위기란다. 우리나라도 회사에서 회식을 금요일을 많이 피하던 기억이 난다. 요새 글로벌 트렌드인가.
어째든 후안은 목요일 저녁도 자기 친구들과 함께 우리를 초대할려고 했지만 여러 사정상 가기 힘들었고, 대신 우리는 후안이 소개해 준 식당에 찾아가서 맛있는 식도락을 즐기다 왔다.
어디서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가 소개해 준 식당은 오래된 빵집으로 최근에 리모델링한 곳이다.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는 빵 맛이 그만인데다가 다른 요리도 무척 맛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주소를 공개한다.

Pan de Lujo   Calle de Jorge Juan, 20 - 28001 Madrid  Tel: 914361100   www.pandelujo.es

관광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식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기가 십상이다.

우리는 낮에는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산미구엘 광장 근처의 전통시장에 가서 이것 저것 보다가 왔다. 
맛있는 음식들 토파스, 와인, 하몽 등 갖가지 음식들을 판다.
역시 이곳은 스페인 사람보다는 관광객들 천지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곳도 좋지만 친구 후안이 소개해준 맛있는 스페인 사람들만 아는 맛집이 더 좋다.

마드리드 가는 길 - 세고비야

세고비야를 가는 길에는 The vally of fallen 이라는 스페인의 유명자 독재자인 프랑코의 무덤이 있다.
스페인말로는 El Valle de los Cadios 라고 하는데, 이곳은 마드리드에서 외곽으로 차로 이십여분만 가면 바로 나온다.
멀리서도 보이는 산 중턱의 거대한 십자가는 한 눈에 알아보게 한다.



우리가 도착한 월요일은 마침 문을 닫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노부부는 경비에게 이야기하고 그곳을 차로 들어가더라. 아마 추측건대 희생자들의 유족들인거 같다.
옆에도 희생자 추모를 위한 무덤들과 꽃다발들이 무수했다.
20세기 지은 단일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라고 하니, 독재자의 힘과 야망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아쉽지만 우리는 이곳을 잠시 바깥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입구의 옆 길에는  조그만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호기심에 혼자 가 보았더니 사람 크기 모양의 석관이 놓여져 있고 이름이 각 관 앞에 쓰여져 있다. 누군가 두고 간 꽃들이 놓여있다. 바람 불고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잠시 무덤과 함께 오싹한 기분을 느끼고 얼른 자리를 떳다.
예전에 모스크바에 갔을 때 보았던 전승 기념관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그곳은 세계 대전의 승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곳이었는데 그곳 앞에서 1년 365일 꺼지지 않는 불이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독재자로 말미암아 생긴 이 거대한 스페인의 기념건축물은 뭔가 우리랑 많이 닮은 것 같아 생각이 깊어진다.

날이 추워지자 우리는 얼른 세고비야로 향했다.
십년전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세고비야의 입구에는 로마시대에 만든 수로가 있는데 그 규모나 견고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구시가지를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걷자 대성당이 나오고, 대성당을 지나자 아름다운 세고비야 성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백설공주 등에서 등장하는 그림같은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과연 들어가는 입구부터 뾰족한 성탑까지 모두 영화에서 보던 그곳과 똑 같다. 예전에도 이 성을 들어가서 생각했지만, 과연 공주가 요즘과 비교하면 어떻게 살았을까? 유리창도 없는 돌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공주의 삶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았을까?












현대 기술이 보급되면서 인간은 그제야 매우 깨끗해졌다. 매일 샤워를 하게 된 것도 금세기의 들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물론 그로 인해 일인당 물소비가 늘고 환경 오염이 급격히 증가되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말이다.
생각이 딴데로 갔지만 어째든 세고비야 성은 머 궁금하면 들어가봐도 되지만 별거 없다. 아내도 보더니 들어가고 싶지는 않단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냥 성 밖에서 사진 찍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성 입구의 매표소 직원은 머쓱해 한다.
우리도 사진 찍다가 세고비야를 나왔다.

로마시대의 수로가 입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로마인들은 어디를 가든 도로를 놓고 수로를 만드는 등 인프라를 닦는데 충실했다.
대단한 힘이었다.  요샌 미국 기업이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잠시 생각해 본다.

Saturday, April 12, 2014

마드리드 가는 길 - 똘레도

세비야를 떠나서 우리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차를 반납하기 전에 우리는 마드리드 인근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이 차로 달린 거리가 6천 킬로가 넘는다.
작은 차인데도 힘도 좋고 트렁크도 넓고 실용적이다. 우리가 리스한 차량은 르노 시트로앵의 클리오 최신 모델이었는데 모양도 예쁘다. 이래서 유럽 사람들이 해치백 모델을 사는구나 싶다.

똘레도는 마드리드 가는 길에 있어서 먼저 들르기로 했다. 나는 십여년 전에 이곳을 간 적이 있다.
똘레도는 왜 이렇게 낯선지 도무지 처음 온 곳처럼 느껴졌다. 과거 기억도 가물해서인가?

똘레도는 과거 스페인의 수도였는데, 고시가지와 함께 맞은편에는 꽤 큰 신시가지가 있다. 똘레도 성당을 오후가 되야 도착해서 잠시 둘러 보다가 우리는 시내를 걸었다.






정말 돌로만 만든 중세 도시답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걷고 걸었다.
똘레도 양식의 칼을 파는 곳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바로 중세 기사들이 자주 쓰던 그 멋진 칼이다.
한 켠에는 일본과 유럽 각지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깃발을 들고 따라 다닌다.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단체 관광객을 많이 보았는데 유럽사람들도 의외로 단체로 다니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조금 중년이나 아니면 아주 어린 학생들로 전세 버스로 몇개국을 다니더라.

저녁이 어둑해져서 우리는 한 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 곳은 축구를 보는 젊은 애들이 한창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다. 파에야와 닭다리 요리를 시켰는데, 머 내가 직접 하는 파에야가 낫겠다 싶다.

저녁때가 되자 오히려 관광객들이 더 몰려들었는데 아름다운 똘레도 대성당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절벽에 가까운 큰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똘레도는 아마 든든한 요새이자 마을이다.
이곳에서 또 얼마나 많은 중세의 기사들이 피를 흘렸을까. 화려한 똘레도의 야경 뒤에 숨은 과거 이야기를 상상하며,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둑해지자 똘레도를 빠져 나왔다.

세비야 쇼핑기

저녁때 플라멩고를 보는 겸사해서 세비야 거리를 나왔다.
이곳에는 쇼핑몰 천지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창이다.
예전과 달리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을 일찍 켜지는 않는거 같다. 불경기라서 그런가.
이곳에서 나는 옷 몇벌을 샀다. 올 때 가져온 가을 옷으로는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을 견디기 어려울것 같아서였는데, ZARA 라든가 MANGO 등 우리나라에 입성한 브랜드들이 스페인 것인 줄은 이 곳에 와서야 알았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여자 가방도 나는 잘 모르지만 괜찮은 로컬 브랜드가 몇만원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가죽이 말이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를 거치면서 눈여겨 보왔지만 역시 쇼핑도 스페인인가..
먹을것부터 쇼핑 노는것까지 머 하나 빠지는게 없다.
그래서 그렇게 지내기가 좋은가보다.

어째든 수퍼마켓의 식재료부터 옷과 같은 패션 등 모두 내 감으로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여성복이 블라우스나 셔츠가 삼만원 이하로 브랜드로 판다면 상당히 싼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어째든 겸사 겸사 우리는 이곳에서 몇가지 겨울 옷가지를 사서 쇼핑을 마쳤다.
한국에서 사는 감으로 보면 매우 싸게 산거 같아 아내도 흡족해 한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과 플라멩고

스페인 광장을 걸어갔다. 대성당에서 십오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나는 출국 전에 미리 깔아 놓은 Sygic 이라는 네비게이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원하는 곳을 찍고 길안내를 부탁하면 아주 잘 알려준다.
이렇게 찾아긴 스페인 광장은 김태희가 모 광고에서 플라멩고를 춘 곳이라고 한다.
아름답고 스케일도 큰 이 광장에서 우리는 사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운데 있는 물분수가 시원하다.
아마 여름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단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유롭게 사진은 못찍을 것 같다.














스페인 광장 안에는 둘러가면서 각 주요 도시별로 스페인의 역사가 지도와 그림으로 표현되있다. 이슬람과 고딕 양식이 섞여 있는 이 광장에서 그럼에도 잘 조화된 아름다움울 느끼면서 즐겁게 보았다. 덤으로 바로 옆에 큰 공원이 있는데 역시 11월이라 아쉽다.








우리는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세비야는 거리마다 플랑멩고 공연 포스터로 넘쳐난다. 운이 좋으면 카페나 펍에서 저녁에 플라멩고를 추는 것을 공짜로 볼 수도 있지만 아내는 평이 좋은 소극장 플라멩고를 예약하자고 한다.
미리 얘약하고 들어간 소극장은 이백명 정도가 이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하루에 한시간 두번  동절기에는 한번 플라멩고를 공연하는데 속으로 계산해보니 연매출이 4~7억은 될거 같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춤이 시작됐다.










딱 집시 춤이다. 내 생각에는 모닥불 피워 놓고 저녁때 홍겹게 추면 딱 맞을 것 같다.
유럽에서 집시들을 자주 보았지만 역시 그들의 삶에도 애환도 있고 사연이 있다. 힘있고 정렬적인 플라멩고는 내가 보기엔 TV에서 보는 것 만큼의 절묘함이나 신기함은 없지만, 공연하는 사람의 땀방울이 보일 정도로 정렬적인 춤시위에 잠시 집시들의 기쁨과 슬픔, 애환에 잠겨본다.

이제 이 세비야 일정을 마치면 마드리드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
나도 이제 저렇게 일상을 다시 땀흘리며 뛰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세비야 입성기

아내는 그라나다를 무척 맘에 들어했다. 이곳에서 묵은 Arte Vida Suites 라는 아파트 호텔이었는데 내부 장식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 주인 파블로와 친해져서 이것저것 얘기하다보니 스페인 금융위기로 인해서 호텔 오픈한지 2년되었는데 처음에는 좀 고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한다.
호텔 평이 매우 좋아서 이곳을 선택했었는데, 파블로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는게 무척 기쁘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답지 않게 영어에 매우 능숙해서 그에게서 좋은 정보도 많이 얻었다.






우리는 파블로와 작별인사를 하고 세비야로 향했다.
저녁때 도착한 세비야에서 밤거리를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스페인의 밤은 아홉시 열시가 되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우리가 걸은 시간은 초저녁이라고 해야 맞다. 어째든 이곳에서 대성당도 지나가보고 아름다은 스페인 광장도 걸어보았다.
시내 곳곳은 이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이슬람 문화가 남아 있다. 많은 집도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져있다.
대성당은 규모가 엄청난데 역시 곳곳에 이슬람 문화가 남아 있다. 가장 높은 종탑 역시 이슬람 양식이다. 그 종탑을 이슬람 교도처럼 보이는 흑인 청년이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한 그곳 대성당에는 콜롬부스의 관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콜롬부스의 관을 4명의 스페인 국왕이 떠받들고 있다는 것이다.
콜롬부스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 앞에서 콜롬부스 동상을 보았고, 그라나다에서 이사벨 여왕과 계약을 맺는 콜롬부스 동상을 보았고, 이곳 세비야에서는 그의 관을 보았다.









스페인 역사에 콜롬부스가 남긴 영향력은 정말 지대하다.

또한 이곳은 역시 포르투갈 출신의 평민인 마젤란이 스페인국광의 지원을 받아 세계 일주를 시작한 곳이다. 마젤란은 고생 끝에 세계 일주를 마쳤으나 필리핀에서 죽음을 당한다. 스페인에는 막대한 식민지 부를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세계 역사책에서나 보던 어릴적 기억이 새롭다.
우리는 마젤란이 출항했던 과달키비르 강의 황금색 탑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전성기의 스페인의 야망과 도전에 대해서 상상해보았다.






그 당시 그렇게 도전 정신에 충만했던 이 곳 이베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오늘날은 먹고 놀기만 좋아하는 거 같고 경제 위기까지 맞게 되었을까? 역사는 느스한 마음으로 살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보장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