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2, 2014

베른에 가다

우리는 취리히로 향했다. 이곳에는 내가 교회 고등부 선생을 할 때 고등학생 제자가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서 이곳 취리히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잠간 있는 중이라 겸사겸사 간다. 취리히는 출장 중에 몇번 거쳐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보기는 처음이다.
인스부르크에서 네비를 찍으니 세시간이 조금 넘게 나온다.
기름을 든든히 넣고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터널이 끝이 없다.
차로 이삼십분을 달린것 같은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터널도 몇개 있는거 같았다.
알프스를 뚫고 터널을 만든 이런 스위스인의 의지에 경탄을 보낸다.
예전에 신혼여행으로 인터라켄에서 융푸라우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산까지 올라가는 열차 역시 스위스 군인들의 목숨과 바꾼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예약한 아파트 호텔에 도착해서 간단히 밥을 지어먹고 다음날 아침 베른으로 향했다.후배와는 저녁 다섯시경에 만나기로 했다.
베른은 생각보다 아기자기했다. 예전에 가본 루체른과는 또 달랐다. 구시가지는 작았지만 볼만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먼저 아인쉬타인 하우스를 찾았다.
아인쉬타인이 성인 시절에 가장 오래 머문 집으로 그의 신혼집이기도 했다. 아인쉬타인이 사용하던 책상이나 걸상 침대 등을 보면서 소박하지만 실용적인 것이 다분이 느껴졌다. 공돌이긴 나에게는 웬지 익숙한 분위기라고 할까?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인쉬타인은 짜여진 학교 교육을 견디지 못하고 개방적인 스위스로 건너왔다. 이곳에서 독학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도 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특허청에서 일하기도 했다.



아인쉬타인 하우스는 사실 들어가며보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아인쉬타인이 쓰던 방 한개만 달랑 있고, 위층에는 비디오 전시와 그의 인생을 연대기로 정리한 내용만 있다.
무명시절의 아인쉬타인은 먹고 살 걱정 해야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를 세상이 갑자기 알아주는 기적의 해(그곳의 표현을 빌렸다)인 1905년을 기점으로 일약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그가 하던 일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전과 후과 별 차이가 없다.
한길을 꾸준히 개척한 그에게 때가 되니까 세상의 인정도 따라 왔을 뿐이다.

하지만 아인쉬타인의 가정생활은 그렇게 성공적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사촌누이를 사랑해서 아내와 이혼하고 두 자녀를 전처에게 남기고 새생활을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요즘은 보통일이지만 과연 그렇다고 보통일일까?  
이것저것 생각에 잠기다가 아인쉬타인 방을 나왔다.

바깥은 날씨가 흐려서 제법 추웠다.
우리는 얼른 대성당을 들어갔다.
뽀족뽀족한 성당의 양식이 비엔나의 스테판 성당을 연상케 했다.
그곳에 들어갔더니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이 파이프오르간 연주자가 한창 연습중이다.


( 성당정문에 있는 에르하트 쿵이 조각한 '최후의 심판' 이다.
  여기에는 234명의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성당을 한참 돌아보았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왔다. 웬일인지 성당 한켠에서 한 아주머니가 펑펑 울면서 기도하는 듯 했다. 못본척하고 돌아다니면서 속으로 이런 모습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나는 입장료를 내고 베른시내 전체를 볼수 있는 성당 꼭대기로 올라가기로 했다. 올라가는 길은 예전 바르셀로나에서 출장 중에 올라가본 사가라다파밀리아 성당 처럼 끝없는 나선형 계단을 틈도 없이 계속 올라가야 나왔다.
돈이 아까와서 올라가다가 중간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과 구멍이 뻥 뚤려서 보이는 베른 시가지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내는 내려가자고 한다.
그럴 수 있나. 돈이 아까워서라도 올라갔다, 베른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도시다. 명색이 스위스 수도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 바로 뒤에 일련의 유럽 아가씨들이 올라왔는데 표정이 안좋다. 바로 내려가 버린다.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성당에서 내려와서 허기져서 중식당이나 일식당이라도 찾아 볼려고 했지만 점심시간이 아슬아슬하게 지나버려서 삼십분만에 찾은 일식집은 뭄을 닫았다. 할수 없이 맥도널드를 찾았다.
스위스 산 맥도널드는 가격과 질부터 달랐다. 두개 삼만원, 그 안에 든 패드나 치즈가 남다르다.
너무 맛있게 먹다가 먹는 것 때문에 아내랑 싸워버렸다. 금방 화해하긴 했지만, 스위스는 맥도널드도 다르다.
취리히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우리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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