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2, 2014

파리에서 만난 그림들과 사람들

사실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문외한에 가깝다.
하지만 오랜 유럽 출장 기간동안에 웬만한 미술관과 고성 교회에 있는 그림들과 조각들을 거의 만나 보았다.
이번에 파리 루브루 박물관도 세번째 가 본 셈이 되었다.
익숙한 곳을 따라 걷다 보면 예전에 전시하던 곳이 막혀 있다던가 하는 것까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많은 그림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알게된 그림의 의미는 그 당시와 오늘날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루브르를 박물관으로 만든 이곳의 주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림을 몇번이나 보게 되었다.
이 그림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를 추종하는 다비드가 수년에 걸쳐 그린 그림으로 루브루를 일반에게도 공개하면서 많은 대중들이 보게 된 그림이다.
한 마디로 이 그림은 그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매스미디어였다.

오늘날 그림은 돈 많은 부자들이나 일부 매니아들의 소장품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당시 그림은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불려 일으키는 혁명의 소재나 종교의 소재 또는 그림을 사는 왕이나 귀족들의 구미를 나타내는 소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림에도 하나 하나 뜯어보면 그 당시의 역사 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솔솔 풍겨오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나는 어릴적부터 르느와르의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오르세에 있는 르느와르 그림 중에 특히 무도회장 그림은 나의 발길을 사로 잡았다.
르느와르 개인의 일생은 불행했지만 그는 항상 밝고 명랑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무도회장 그림 앞에서는 르느와르의 그림이 나에게 먼가 연결되는 듯한, 나에게 밝은 기운을 주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그림을 떠날 수가 없었다.
영국 미술관이나 오랑주리 미술관 등 다른 곳에서도 르느와르 작품을 보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무도회장은 르느와르 작품중에서도 수작이다.
문외한인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이렇게 먼가 말하는 그의 삶과 정신까지 느끼게 하는 그림은 없었으니 말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프리다 깔로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루브루에 들어가는 줄보다 훨씬 더 긴 2시간 이상을 서서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그림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듣는 여자 화가의 이름에 좀 어리둥절하였지만, 프리다 깔로의 일생과 유작들을 보면서 그녀의 삶의 스토리를 알게 되자 그림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멕시코 출신으로 멕시코의 최고 화가로 인정받던 디에고와 20살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적에 심한 교통 사고를 당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세번이나 유산을 했다.
심지어 남편이 자신의 여동생과 외도를 하기도 했다. 이에 견디지 못하고 이혼했지만 그녀의 삶의 고통이나 아품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하고 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 그것이 가장 감동이 되는 법이다.

깔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속삯이는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그림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강렬하게 붙잡는다.




나는 우연히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프리다 깔로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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